스웨덴 발렌베리 가문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수출주도 산업화로 무역의존도가 높은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몇몇 가문들이 대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소유, 지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스웨덴에서도 반기업 정서는 존재하며, 이케아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세계 4위의 슈퍼리치이지만 세금회피를 위해 스위스로 이주하여 스웨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스웨덴에서 존경받는 기업 가운데 하나가 현재 5대째 세습경영을 하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이 있습니다. 세습은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발렌베리 가문의 독특한 경영 철학과 방침은 발렌베리 왕국을 150년 넘게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1. 발렌베리 가문의 시작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1816년 ~ 1886년)가 스웨덴 최초의 근대적 상업은행인 스톡홀름 개인은행(SEB)을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면서 발렌베리 가문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앙드레는 1832년 17세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해군장교가 되었고, 견습 사관으로서 미국에 2년간 머물며 은행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스웨덴 최초의 증기선인 린쇠핑호의 선장을 역임하고, 중부지역 해군책임자를 거쳐 순드발지역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주목받은 정치인이 된 그의 정치적 배경이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스웨덴은 산업혁명에 힘입어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는데, 제대로 된 은행이 없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에 앙드레는 1856년 스웨덴엔스킬다은행을 설립하고 스웨덴 내의 자산가와 외국에서 유치한 자금을 국내 산업에 공급하여 막대한 부를 쌓게 되었습니다.
2.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
앙드레에게는 21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이중 장남인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1853년 ~ 1938년)가 가업을 승계 받았습니다. 크누트는 프랑스 크레디리요네 은행에서 전문 금융교육을 받았고, 21세에 스웨덴엔스킬다은행의 이사로 선임되어 은행 경영에 참여하였습니다. 외국 생활동안 구축한 런던과 파리의 금융계 인맥을 통해 해외자금 조달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습니다. 1911년 스웨덴에서는 은행의 일반기업 주식의 직접소유 및 경영참여가 가능해짐으로서 발렌베리 가문은 엄청난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 대부분의 은행은 피지배기업들의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히 도산했습니다. 크누트는 이복동생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시니어(1864년 ~ 1943년)에게 피지배 부실기업들 중 성장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에 대한 워크아웃을 실행하도록 했습니다. 마르쿠스는 부실의 주범이 무능력한 경영자라고 판단하여 해고하였고, 동시에 회사의 부채를 탕감시키는 등 오랫동안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르쿠스의 첫 작품은 현재 산업용 컴프레서 및 압축 공구 세계 1위 기업인 아트라스 콥코의 전신인 아트라스였습니다. 기존 경영진을 갈아치운 마르쿠스는 유능한 40대 경영자를 새로 투입하였고, 새로운 경영자는 수익성이 없는 공장을 폐쇄하고 다른 공장에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부채 청산을 위해 신규법인 Nya atlas를 세워 기존 회사의 자산을 모두 인수하고 나머지는 모두 청산했습니다.
이 밖에도 철강회사 호포스(현재 SKF), 발전설비회사 아세아(현재 ABB), 트럭제조사 스카니아 바비스(현재 스카니아) 등 유수의 기업들이 그의 작품입니다.
크누트는 자선사업 추진과 함께 정계에도 진출하여 외부장관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선언한 스웨덴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던 그는 그와 자신의 아내이름을 붙여 만든 '크누트앤앨리스 발렌베리 재단'에 그의 재산 전부를 기부했습니다.
이때 수립된 2인 지배체제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명중 한 명은 지주회사, 한 명은 은행을 맡는 것이 보통입니다.
3. 전성기는 계속된다
3대가 되면, 크누트의 조카인 야콥 발렌베리가 금융부문을, 마르쿠스 발렌베리가 산업부문을 담당하며 가문의 기업 수를 한층 늘려갔습니다.이때 에릭슨을 사들이면서 오늘날과 같은 그룹규모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4대 마르크 발렌베리는 스톡홀름엔스킬다 은행과 스칸디나비스카 은행 합병으로 인해 자살하였습니다. 3대 마르쿠스 발렌베리는 합병을 통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거대은행을 만들고자 하였고, 4대인 마르크는 가문의 은행을 지키고자 합병에 반대했습니다. 둘은 부자지간이었지만 이 의견에 대해 마찰을 빚었고, 합병안이 가결되자 마르크는 자살한 것입니다.
현재는 5대째로 동갑내기 사촌인 마르쿠스와 야콥이 투톱으로 가문 기업들을 이끌고 있으며, 6대째의 세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발렌베리 리더 그룹은 30대 이하의 친족 30명 정도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 소유기업
발렌베리 가문의 기업은 1970년대 스웨덴 산업인력의 40%를 고용했고 스톡홀름 주식시장 총액의 40%를 차지했습니다.발렌베리 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3개의 발렌베리 가문 소속 재단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습니다. 몇개의 회사는 재단이 직접 소유하는 기업이고, 나머지 회사는 재단에서 직접 소유한 지주회사 인베스토르 AB의 피지배기업입니다.
이들이 소유한 기업은 스웨덴 대표은행 SEB, 가전 Electrolux, 통신 Ericsson, 항공기 및 자동차 Saab, 전력 분야의 세계적 기업 ABB, 산업기계 Atlas Copco, 제약 AstraZeneca, Grand Hotel, 미국 장외 주식시장 NASDAQ OMX 등 대표 간판기업 19곳을 포함 100여개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기업을 '소유하기는 어려워도 재단을 통해 지배는 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에 성공하였습니다. 막대한 세금과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것은 회사 경영에 필요한 의결권에 대해 황금주라고 불리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발렌베리 가문이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발렌베리 가문의 상당수 주식은 일반 주식의 최대 1,000배(현재는 최대 10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부여받아 기업의 경영권이 확실하게 보장됩니다. 차등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합해 재단 소유 주식의 의결권은 현재 약 90%에 육박합니다. 이 제도의 기원은 극심한 노사분규에 시달렸던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웨덴경영자연합(SAF), 스웨덴노총(LO), 그리고 정부는 3자 간 역사적인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셰바덴협약(Saltsjobaden Agreement)을 체결하였습니다. 협약의 핵심은 1)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오너 일가의 기업 지배권을 인정하고, 2)대신 기업이익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기업의 선택 사항이었지만 이후 북유럽에서 확산되어 스웨덴 상장 기업의 55%, 핀란드 상장 회사의 36%, 덴마크 상장 주식회사의 33%가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5. 그들의 삶
스웨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주체인 발렌베리 가문은 기업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지만 예상과 다르게 각 개인은 스웨덴 부자명단에서 그 이름을 찾기 어렵습니다. 스웨덴 경제지 Veckans affrer(주간 사업)가 2014년 147대 부자 명단을 공개했는데, 발렌베리 가문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가문의 부는 대부분 공익재단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개인 재산은 빈약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발렌베리 제국의 핵심 지주회사인 인베스토르 이사회는 발렌베리 가문 구성원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사회 의장직과 부의장은 발렌베리 투톱이 맡고 있고 나머지 이사들도 발렌베리 그룹의 전문경영인 출신이거나 대학교수 출신으로 친정체제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또 다른 축인 상업은행 SEB 의사회의 의장직도 발렌베리 가문의 핵심 구성원이 맡아서 전통적으로 인베스토르와 SEB의 이사회를 장악하는 방식으로 그룹 내 기업들의 경영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경영세습과 막대한 부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발렌베리 그룹이 국민기업이 된 까닭은 지난 160년 간 기업의 생존 기반은 사회라는 창업자 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한번 세운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고, 사회에서도 이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6대 세습을 눈앞에 둔 발렌베리 가문의 명맥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발렌베리 가문의 가계도에는 세대마다 적어도 한 명의 마쿠스와 한 명의 야콥이 등장합니다. 이 독특한 명명법은 발렌베리 가문의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후손들에게 강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유대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미래세대의 성공을 기원하는 그들만의 방식입니다.
그룹 설립자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는 자녀들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시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세계 금융 중심지에서 경험과 능력을 쌓게 하는 치밀한 후계프로그램을 실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검증된 2명이 후계자로 선정되며, 후계자들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지키고, 가문이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특권보다는 의무와 책임에 대해 가르칩니다.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Esse non videri)'는 가문의 모토 아래 대중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금지합니다.
때문에 발렌베리 가문이 탈세나 사생활 문제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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