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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금과 인간의 역사 05

by inniable 2023. 6. 21.

소금과 인간의 역사 05

알람브라 칙령으로 인해 쫓겨난 유대인들은 네덜란드에 정착한 후 소금을 유통하였고, 절인 청어 산업을 확대시켰습니다. 이 산업은 척박했던 네덜란드 경제헤 활력을 불어넣었고,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많은 인구가 청어와 연관된 산업에 종사하게됩니다. 유대인의 소금유통에서 부터 시작된 네덜란드의 부는 이때부터 중개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됩니다.

 

네덜란드의 부, 절인 청어에서 시작


유대인들은 염장 대구가 영국 및 프랑스의 해군과 상선의 필수품이 된 것을 보고, 네덜란드의 해군과 상선에 소금에 절인 청어를 공급했습니다. 소금과 절인 청어의 안정적인 공급처와 수요처를 확보한 유대인들은 절임청어를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서 유럽전역에 판매하였습니다. 이후 네덜란드의 한 어부는 소금 대신에 해수를 졸여서 만든 농축된 간수에 청어를 저장하게 되면 소금에 절이는 방식보다 훨씬 더 오래, 신선하게 보존되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절인 청어를 더 먼 지역까지 팔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청어 처리에도 분업화를 도입하여 절인 청어 산업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청어를 잡는 사람, 잡은 청어의 내장을 발라내는 사람, 간수에 절여 통에 보관하는 사람 등으로 절차를 나누었습니다. 숙련되기 시작하자 1시간에 약 2천 마리의 청어내장을 발라낼 수 있었고, 이로써 절인 청어의 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청어의 포획, 가공, 수출은 기업화되었고, 절인 청어가 본격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네덜란드에서 어업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위원회는 네덜란드 의회로부터 법적 권리를 부여받아 청어산업을 체계적으로 관리 감독했습니다. 위원회는 품질관리를 위해 저장용 통의 재질과 소금의 종류, 포획용 그물의 크기 등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가공된 절인 청어 상품의 중량, 포장 규격 등의 품질기준을 만들어 엄격하게 관리하였고, 네덜란드산 청어가 품질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했습니다. 그리고 어획시기를 한정하여 청어산업의 장기적인 포석과 함께 공급을 조절하면서 청어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럽시장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공정관리와 유통 장악 그리고 공급 조절 등은 본래 그들의 특기였습니다.

 

1596년 네덜란드 항해가 빌렘바렌츠는 북극해 스발바르제도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포를 사용하여 고래를 잡는 기술을 가진 네덜란드인들은 스발바르 제도를 장악했고, 네덜란드는 고래잡이 분야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대량의 고래기름과 고래수염을 얻을 수 있었고, 고래 고기는 찬 음식으로 분류되어서 육식이 금지된 금식일에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기로 오랫동안 유럽인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네덜란드 및 영국의 포경선들은 17세기부터 19세기 까지 북극해 일대의 고래를 멸종 단계로 몰아넣었습니다.

 

네덜란드 경제의 활황


1620년에 네덜란드의 선박 수는 2천척이 넘었는데 이들중 대부분이 70t~100t 규모의 청어잡이 어선이었습니다. 한 척당 약 15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었고, 약 3만 명 이상의 어부가 청어잡이선에 조업했습니다. 네덜란드는 1630년 ~ 1640년 사이에 연간 약 32,500t의 청어를 처리해 당시 유럽 전체 포획량 60,000t의 50%를 넘게 됩니다. 1669년에는 청어 잡이와 청어의 가공, 통 제작, 그물, 어선 건조 등 청어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약 45만 명이었습니다.

 

수산업에서 촉발된 네덜란드의 경제는 배를 만드는 조선업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는 운송업으로 발전되면서, 목재업, 무역업, 금융업의 발전을 초래했습니다. 이렇듯 청어 어업이 네덜란드 경제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청어산업으로 인해 한자(Hansa)동맹 상인을 물리치고 북유럽의 무역 주도권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덕분에 베네치아에서 포르투갈로 이어졌던 페르시아 상품의 유럽 유통권을 인계받았습니다. 유대인을 추방 해버린 포르투갈에서는 페르시아의 무역 상품을 실은 배가 들어와도 이 상품들을 유통시킬 유대인들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네덜란드 시대가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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