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안의 역사 01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자기들 이외의 민족을 바바리안이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전쟁에 있어 잘 짜여진 전략과 전술을 활용했던 그리스와 로마인에 비해 짐승처럼 전쟁에 임했던 그들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유하고, 부족 국가를 형성했으며, 유럽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바리안
바바리안의 사전적인 뜻은 야만인,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속에서 바바리안은 로마제국을 해체시키고 문명을 파괴한 야만적이고 미개한 이방인 혹은 이교도가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국가를 건설하였고, 문명화를 꾀하던 비로마인들이자 비그리스도 교도였습니다.
그리스시대에는 바바리안이란 말은 비(非)그리스인이란 뜻에 더 가까웠습니다. 오랑캐와 같이 경멸의 뜻도 있었지만, 현대인들이 야만인이라고 일컫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도 주변의 야만족들을 바바리안이라 불렀으며, 로마 제국 말기에 로마를 침공하였던 이민족들을 모두 바바리안이라 불렀습니다. 대체로 게르만족을 말하며, 켈트족, 고트족, 훈족, 프랑크족, 반달족, 앵글로색슨족 등이 로마 말기의 바바리안들입니다.
켈트족 (Celts)
켈트족(Celts)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알프스 산맥 주변에서 나타난 아리아족을 말합니다. 갈리아의 라틴어인 켈타이(Celtae)에서 유래된 명칭입니다. 켈트족은 붉거나 금발에 머리를 땋았으며, 날개달린 투구를 썼습니다. 유럽 최초로 바지를 입는 등 문화도 상당히 앞서 있었고, 로마에서 포도주를 먹을 때 켈트족은 맥주를 마셨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켈트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만화 아스테릭스(작가 : 르네 고시니) 는 로마군에 맞서 싸운 켈트족들의 이야기입니다.
BC 7세기경 도나우 지방에서 이동해 온 켈트족이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방에 정착해서 씨족사회를 형성하였습니다. 스키타이인들이 실롱스크, 모라바와 체히를 침입하며 확장하자, 이들을 부러워하던 켈트족은 동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체히, 모라바, 그리고 실롱스크 지역 일부와 비스와 강 유역을 점령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켈트족의 위대한 팽창이 시작됩니다. 기원전 390년에 켈트족은 로마를 공략하고 유럽의 모든 국가를 공략하려고 위협하였습니다. 소아시아를 뒤흔들고, 일부 켈트 부족들은 그 곳에서 영구 거주하며 후일 갈라티아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로마 제국의 확장은 대륙의 켈트족들의 로마 문화 흡수를 가속시키게 됩니다.
켈트족은 전형적인 유럽의 전사였습니다. 로마와는 다르지만 나름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싸울때는 짐승처럼 싸우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이들을 두려워 하였습니다. 다양한 하위민족이 있었고, 부족간의 개성들이 다 달랐습니다. 유목을 하거나, 농경을 하면서 정착하는 부족도 있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에 의해 바바리안으로 불렸지만, 기하학적 문양을 아름답게 세공할 수 있었고, 보석과 금속세공에 뛰어났으며,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따뜻한 옷을 잘 만들었습니다. 포도주보다 훨씬 제조가 복잡한 맥주를 마셨던 것을 보면, 별도의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 중세에 켈트족의 이러한 예술적 문화적 감성은 다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75년경 영국에 기독교가 상륙했습니다. 영국은 앵글로 색슨족의 문화권이었지만, 켈트족의 문화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4~11세기까지 로마교황청의 지배가 이루어지기 훨씬 전부터 기독교가 자리잡았고, 선교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일상생활과 자연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켈틱 영성이라는 기독교 전통을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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