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안의 역사 05
서게르만계의 프랑크족은 피레네 산맥에서부터 엘베강에 이르는 서유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제국을 세웠습니다. 정치적 문화적 통일을 이루며 강력한 그리스도 국가를 건립하게 됩니다. 5세기경부터 잉글랜드로 건너간 앵글로색슨족은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잉글랜드를 거의 통일할 수 있었지만, 1042년 노르만족에 의해 침략당하고, 북유럽에 거주했던 노르만족의 일부는 잉글랜드를 침략한 후, 노르망디 공국과 노르만 왕조를 세우게 됩니다.
북프랑스의 프랑크족 (Frank)
서 게르만계의 프랑크족은 부족국가에서 발전하여 다른 게르만 부족을 정복 통합하였고, 프랑크 왕국(481 ~ 843)을 세워, 지금의 북프랑스, 벨기에, 독일 서부 지역 등을 점령, 피레네산맥에서 엘베강에 이르는 서유럽의 대부분을 포함한 대제국이 되었으며, 정치적, 문화적 통일을 이루어 중세유럽의 초기에 강력한 그리스도교 국가를 건립했습니다. 프랑스 국명도 이 부족명에서 유래했습니다.
프랑크 왕국은 서유럽 최초의 그리스도교적 게르만 통일국가로 그리스도교 문화 및 중세 여러 제도의 모체가 되었으며, 동시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제국이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붕괴 과정 속에서 탄생하였습니다.
프랑크 자유, 용기를 뜻합니다. 이 명칭이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3세기 중반입니다. 타키투스 시대에 부족명으로 존재하지 않아 부족의 형성 과정은 불분명 하지만, 라인강 중류, 하류 동안의 여러 부족을 위시하여 많은 소부족의 혼성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겨집니다.
4세기 초 라인강 하구에서 북 브라반트에 거주하는 살리족, 쾰른을 중심으로 한 라인강 유역의 리부아리족, 헤센 지방을 중심으로 한 상 프랑크족의 3대 부족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살리족은 5세기 초 셸데강 유역까지 세력을 확대하였으며, 이 무렵 데스파르굼이라고 하는 작은 지방의 소왕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 메로빙거 왕가였습니다. 이 가문에서 나온 클로비스 왕은 살리족을 통일하고, 리부아리족과 상프랑크족을 병합하여 5세기 말에 프랑크왕국을 수립하였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역사는 전반의 메로빙거 왕조 시대와 후반의 카롤루스 왕조 시대로 나뉩니다.
카롤루루스 왕조의 2대왕인 샤를마뉴 대제(742~814)는 오늘날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독일 및 이탈리아 등에 거치는 대규모 영토를 확장했고, 일생동안 50회의 원정 전쟁을 벌였습니다. 800년 샤를마뉴는 로마로 진격해서 로마의 기족으로부터 축출당한 교황 레오3세를 도와주었고, 레오3세로부터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샤를마뉴 대제가 벌인 스페인 원정의 귀로 중에 바스크족의 습격으로 후군이 전멸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중세 대서사시인 롤랑의 노래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이 카롤루스 왕조 역시 메로빙거 왕조와 똑같이 분할상속에 의해 분열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샤를마뉴의 아들 루트비히 1세 사후에 프랑크 왕국은 3명의 아들에게 분할되었습니다. 843년에 장남 로타르의 중부제국(로트링겐, 부르군트, 북이탈리아), 차남 샤를 2세의 서프랑크 왕국, 3남 루트비히의 동프랑크 왕국으로 분할되었습니다. 여기서 또 중부제국은 로타르의 사후 다시 3개의 국가로 분할되었고, 얼마 안가서 모두 혈통이 끊겨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나, 동프랑크에서는 911년까지, 서프랑크에서는 987년까지 카롤루스 왕조의 후손들이 계속 왕을 이어받아 혈통을 이어갔는데, 동프랑크는 콘라트 1세를 거쳐 작센 왕조의 독일 왕국으로 발전하고, 서프랑크는 카페 왕조의 프랑스 왕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영국의 앵글로 색슨족(Anglo-Saxon)
5세기 독일 북서부에서 브리타니아로 넘어간 게르만족의 일파입니다. 원래는 잉글랜드의 색슨족을 대륙의 색슨족과 구별하기 위한 용어였으나, 현재는 노르만이 영국을 정복하기 전 영국인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현재의 영국 국민의 중심을 이루는 민족이며, 앵글족, 색슨족, 유트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종적으로는 북방계에 속하여 키가 크고, 흰 피부와 금발, 푸른눈에 푸른눈에 좁고 높은 코 등의 육체적 특징이 있으며, 민족적으로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게르만(튜턴)족의 분파입니다.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에 이주했던 5 ~ 6세기에 관해서는 아직도 불분명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 그들은 문자를 갖지 못하였고, 때문에 신뢰할 만한 문헌적 자료가 없기 때문에 약간의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서만 해석이 가능합니다.
베다(674 ~ 735)의 영국 교회사(8세기)에 따르면, 스코트족과 픽트족 등의 침입으로 고통 받는 영국 남동부 켄트 지방에 정착했던 브리튼인의 수장은 앵글족의 도움으로 그 침입에 대응하였으나 오히려 앵글족에게 영토를 빼앗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무렵부터 약 150여년간 앵글로 색슨족의 이주가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앵글로 색슨족은 섬의 동부 저지대 지역에 들어간 후 잇달아 작은 국가들을 건설하였습니다. 이 국가들은 소국이며 종족국가로서 이주와 정복을 통하여 승자가 된 종족의 군사지도자가 왕이 됩니다. 이 작은 국가들은 서로간에 또는 서부로 몰아낸 켈트족과의 항쟁을 계속하게 되며 7왕국 시대가 전개됩니다.
6세기 말에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전파되어 성장중에 있던 왕권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후 웨식스 왕국이 강력해지면서 9세기 전반에 액버트에 의한 전 잉글랜드의 정복, 후반에는 앨프레드 대왕이 잉글랜드 통일에 거의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9세기부터 시작된 노르만족의 침략 결과로 1016 ~ 42년 노르만족의 왕 카누트와 그 후계자에 의한 지배로 인해 앵글로 색슨왕조는 무너지게 됩니니다.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만족(Norman)
게르만족 중에서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지방을 원주지로 하는 부족을 일컫습니다. 북쪽 사람(Nortmanni)이라는 뜻으로 바이킹이라고도 합니다. 인종적으로 북유럽인종에 속하며 키가 크고 얼굴이 길며 흰 피부와 금발, 파란 눈 등이 특징입니다. 게르만의 이동 때는 원주지에서 농경, 어업, 목축 또는 해상 약탈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8세기경 본국이 통일 왕국을 형성하자, 독립적 지위를 잃은 일부 부족장들이 토지를 갖지 못한 부족민을 이끌고 침략적, 약탈적 이동을 개시하게 됩니다.
본래 항해술이 능하고 모험심이 강한 이들은 크게 세 방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덴마크계는 프랑크, 잉글랜드 쪽으로 향하였으며, 그들의 수장 롤로가 912년 샤를 3세로부터 센강 하류의 노르망디 지역을 봉토로 받아 노르망디 공국을 세웠고, 1066년에는 노르망디공 기욤(윌리엄 1세)이 노르만 정복으로 영국에 노르만 왕조를 열게됩니다.
노르웨이계는 아이슬란드, 그린란드에 도착해서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일부는 북아메리카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스웨덴계는 러시아로 향해 862년 노브고로트 공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일부는 지중해의 시칠리아에서 왕국을 세웠습니다.
노르만의 이동은 처음에는 약탈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난후 각 지역에 정착하게 되면서 상업에 종사하게 되고 현지의 원주민과 동화하여 중세 유럽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2023.06.25 - [역사] - 바바리안의 역사 06
2023.06.23 - [역사] - 바바리안의 역사 04
2023.06.23 - [역사] - 바바리안의 역사 03
2023.06.22 - [역사] - 바바리안의 역사 02
2023.06.22 - [역사] - 바바리안의 역사 01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파르딤 유대인 : 알람브라 칙령까지 탄압의 역사 01 (0) | 2023.06.26 |
---|---|
바바리안의 역사 06 (0) | 2023.06.25 |
바바리안의 역사 04 (0) | 2023.06.23 |
바바리안의 역사 03 (0) | 2023.06.23 |
바바리안의 역사 02 (0) | 2023.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