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춘사건2 훈춘사건과 간도참변 훈춘사건과 간도참변 훈춘사건과 간도참변은 1920년대 활발했던 무장 독립투쟁을 억제하기 위해 일본제국이 벌인 만행입니다. 일본은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을 수립하고 간도지방 진출을 위해 획책한 훈춘사건을 빌미로 일본군 2만명을 간도지방으로 출병시킵니다. 무장 독립군을 토벌하려던 일본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오히려 패배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간도지방의 민간 조선인을 학살하게 됩니다. 목차 훈춘사건과 일본군의 간도 진출 간도 참변 훈춘사건과 일본군의 간도 진출 1920년 6월 봉도동 전투의 패배로 일본은 독립군의 말살을 계획합니다. 독립군의 활동지역이 간도지방이었고, 일본군의 간도진출에 대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일본군은 훈춘사건을 조작합니다. 훈춘사건은 두차례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제1차 훈춘 사건은 1920년.. 2023. 9. 5. 독립군 최초의 승리 봉오동 전투 독립군 최초의 승리 봉오동 전투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최초로 승리한 전투라고 역사적 평가를 받는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6일에서 7일 이틀간 중국 지린성 봉오동(봉오골)에서 치루어졌습니다. 이전까지 소규모로 각개 전투를 벌이던 독립군은 봉오동 전투 직전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라는 연합체를 세웠고, 일본군에 대해 유인, 매복 사격이라는 작전으로 승전을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독립군의 사기는 크게 올랐고, 일본은 만주지역 독립군을 없애기 위해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을 세우고 훈춘사건을 조작하여 만주 지역 독립군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목차 봉오동 전투 전투 경과 역사적 의미 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는 중국 지린성 화룡현 봉오동에서 1920년 6월 6일부터 7일까지 이틀간 만주에 주둔하던 .. 2023. 9. 2. 이전 1 다음